[M] Midnight Train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아저씨, 그 집 이제 아무도 안 살아요” 길게 자라난 잡초가 가득한 정원, 뿌옇게 변한 유리가 있는 거실 창, 그리고 녹이 난 채 방치 되어있는 하얀 정원의 탁자가 윤기의 눈에도 보였다. 눈을 감으면 바로 행복한 웃음을 짓는 지민이 스프링클러를 맞으며 뛰고 있고, 외로움 가득한 모습으로 거실 창을 바라보며 서 있을 테지만 이제는 그저 황량할 뿐인 쓸쓸한 ...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신입생이야? 첨 보는 얼굴이네. 이 수업 어려운데 왜 이거 신청했어.” 마치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듯 으스대며 접근하는 게 뻔히 속이 보이는 의도라 지민은 대꾸도 없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아이가 있었던 데다 윤기가 늘 곁을 지켜 이런 일이 오랜만이라 지민이 조금 놀란 듯 보인 게 오히려 순진한 사람인 줄 착각이 되었던지 사내는 포기도 하지 않고 강의...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정국 씨 우리 얘기 좀 해요” 지민이 소파에 앉아 막 집에 들어온 정국을 불렀다. 아무래도 불안했다. 며칠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필 주주총회가 있는 날이라 지민을 혼자 두고 나가면서도 이상하게 불안하고 겁이 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어김없이 들어 맞기 위해 정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국은 넥타이를 풀고 답답하게 옥죄는 ...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정국의 페로몬이 다 사라진 거실에 벽난로를 피워 놓고 윤기는 담요를 둘러 놓은 지민을 감싸 안고 그가 진정이 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새 동이 터오고 장작이 타는 소리만 고요한 거실에 아주 미약하게 지민의 향이 윤기에게 맡아졌다. 부드럽고 다정한 꽃향기가 처음으로 윤기의 안으로 들어왔다. 지민을 닮은 너무 아름다운 향이었다. “네 페로몬 향이 맡아져...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지민은 느리고도 단호한 발걸음으로 가야하는 곳을 헤매지 않고 모두 들렀다. 인천공항에서 급하게 찾느라 얼마 가져오지 못한 현금은 겨우 호텔의 방 하나를 빌리고 서야 탈탈 바닥을 드러냈다. 지민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은행에 들어가 두둑하게 유로를 받아 작은 가방 속에 야무지게 넣었다. 차명계좌라 추적이 되지 않는 다는 말을 하는 그는 자신의 부가 조금 부끄러...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산책하러 갈래요?” 결혼하고 얼마 뒤 흐드러지듯 핀 라일락이 길에 향그러운 꽃 길을 만들어 두었던 어느 봄 날. 정국은 지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편한 신발을 신으라며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운동화를 꺼내 주는 그의 동그란 머리에 두근거림이 서려 지민은 붉어진 볼을 하고 그와 손 깍지를 하며 동네를 걸었다. 그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마치 꽃이 피듯 설렘...

취향주의 - 국민과 약간의 슈짐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에서 본 것 같은 붉은 벨벳 커튼이 쳐져 있는 기차의 1등석에 몸을 묻었다. 사내는 능숙하게 지민의 가방을 좌석 아래에 밀어 넣었지만 큰 가방 하나는 채 들어가지 않았고 이미 출발한 기차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렸다. 사내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맥주를 따 지민에게 건넸지만 지민은 고개를 저었고 그저 멍하게 사내의 울대가 맥주를 넘기...